[한국관광저널 2000.3] '더러운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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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문화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의 표혜령 사무국장은 화장실에 미쳐 사는 사람이다. 하루에도 불결한 화장실만을 골라 수십 군데 돌아다니며 지내는. 최근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난 그에게서 몇달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모양이 그랬고, 또박또박 이어가는 날카롭고 냉철한 말투가 그랬다. 하지만 여전히 그 냉철함 뒤에는 소박함과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그가 녹색소비자시민연대의 이사 직함을 버리고, 지난해 12월 13일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적으로 화장실 문화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사무국장 자리로 옮겨 앉은 것은, 순전히 화장실에 대한 열정 하나때문이다. 시민연대는 편리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쾌적하고 기분 좋은 화장실, 그런 화장실 이 찾기 쉬운 곳에 있는 우리의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새롭게 창립한 시민 참여형의 민간단체다.
체험적 문화수준 향상돼야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불결하고 불량하고 불편하고 불만스럽고 불쾌한 이미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화장실 관리자나 이용자 모두 문제의식을 갖고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어 나가는데 힘을 모으자는 것이 시민연대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최근 화장실은 인간의 의식주 생활의 필수적인 구조물로서 생리나 위생을 위한 단순한 공간의 역할을 뛰어 넘어 기능성과 쾌적성을 갖춘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이러한 여론의 힘입어 각 지자체들은 민간단체들과 공동으로 화장실 개선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실제로 주요 관광지나 버스터미널, 고속도로 휴게소, 지하철, 공원 등의 화장실이 개보수되고 있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외국인들의 의식 속에,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화장실이라는 점이 표 국장의 맘에 걸리는 부분이다. 특히 이런 점은 2000년 ASEM, 2001년 한국방문의 해, 2002년 월드컵 대회 등 각종 국제행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의 목표 달성에 부채질하고 있는 것. 그는 외국인들이 다시 찾고 싶은 서울로 인식하고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볼거리의 관광상품 개발도 중요하지만, 화장실 이용과 같은 체험적 문화수준의 향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 즉 낙후된 우리의 화장실 문화를 외국인에게 보이기 위해 ‘바꿔보자’라는 등의 관심만으로는 부족하죠. 우리 시민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고 윤기있게 하기 위해 작지만 쾌적한 공간에서 얻는 여유가 생활의 활력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스스로 화장실 문화운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시민연대는 이에 따라 본격적으로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사업에 들어갔다. 1월18일부터는 아름다운 화장실을 추천하고 미운 화장실을 고발하는 ‘고발전화 창구(02-752-4242)’를 개설했다. 아울러 덕수궁 앞에서는 200여명의 회원과 시민들이 모여 “화장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화장실 이제는 시민의 의식수준, 문화수준의 바로미터입니다”라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면서, “화장실 문을 잠그지 말자, 휴지 비치하자, 깨끗이 사용하자, 안내판을 부착하자”는 등의 결의를 지속적으로 다지고 있다. 서울시에서도 이런 뜻을 공감하여 적극적인 동참과 지원한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미운 화장실, 752-4242로 고발하세요.
또한 일간 신문 등을 통해서도 시민연대 고발창구의 전화번호를 알리며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것을 당부했다. 이후 미운 화장실에 대한 전화제보는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다. 하루에 평균 10여 통 이상의 미운 화장실에 대한 ‘분노에 찬’ 시민들의 고발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는 것. 미운 화장실이란 주로 공중화장실, 지하철역, 시장, 주유소, 백화점, 극장, 공공건물, 음식점 등의 대중이 이용하는 화장실로서 휴지가 비치되어 있지 않거나, 수압이 약해 씻겨 내려가지 않은 경우, 화장실 문이 잠겨 있는 경우, 세면대에 물이 나오지 않은 경우 등이 해당된다. 신고가 접수되면, 곧바로 각 지역의 모니터 요원이나 시민연대가 직접 문제의 화장실을 찾아가 확인작업을 벌인다. 제보사실이 검증되면 곧바로 서울시청수질보전과로 넘어가 시정권고에 들어간다.
신고된 미운 화장실을 보면 지하철역이나 철도역, 고궁, 공원과 같은 공공시설물의 화장실 불량이 전체의 52%나 되고 있으며, 불편 순위로는 불결·냄새(52%), 시설노후(14%), 고장방치(11%), 문 잠금(5%) 등의 순. 서울시 중구의 경우, 국내인들은 물론 외국관광객들이 밀집해 있는 롯데백화점(줄서기 안됨),동대문 밀리오레, 동대문종합시장, 덕수궁, 황학동 시장 등의 화장실이 미운 화장실로 신고 접수됐다.
또한 화장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시민연대의 회원뿐 아니라 시민 모두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웹사이트(www.restroom.or.kr)도 마련했다. 이 사이트는 시민들의 의견을 주고받는 장으로서의 기능과 모든 화장실 관련 자료를 주고받는 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화장실 성적표, 화장실 에티켓, 화장실 클리닉 자유게시판, 자원봉사 코너, 여론마당, 행사 및 캠페인 안내, 화장실용품 소개 등이 주를 이룬다. 현재는 전국의 4800여 개의 공중·다중 화장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이 한참 진행 중에 있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전국의 공중·다중 화장실에 대한 정보를 한 눈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싱가포르, 시민연대 배우고 싶다
“이런 계획과 사업들을 하나하나 꾸준히 추진해 나간다면 어려운 일이 많을 것입니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화장실 문화 정착의 예가 자주 거론되지만 이미 우리보다 15년 전에 화장실 문화의 모임이 결성된 일본의 예만 부러워하기보다는 이제부터라도 배우며 실천하고 배려하며 생각하는 공간의 문화에 가슴을 서로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표 국장은 지금까지의 관광산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화장실 문화의 좋지않았던 이미지를 다가오는 큰 행사까지 절대 가지고 갈 수는 없다고 분명히 하면서, 시민연대의 창립 소식과 활동상황을 알게 된 일본주재 싱가포르 ‘스트레이트 타임즈’의 모기자가 시민연대로 전자우편을 보내 온 사연을 소개했다.
이 전자우편은 “한국의 화장실 문화를 위해 시민과 단체가 연대하여 함께 노력한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싱가포르 정부도 화장실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계속 펼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심지어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지 않는 사람들을 불법 행위자로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여 100달러(싱가포르달러) 이상의 과태료를 벌금으로 내게 하면서 사용 후 뒤처리(물내림, 안내림) 조사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은 법에 근거하는 공식적인 캠페인으로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과 단체가 연대하여 힘을 합하여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하는 방식은 흥미롭고 가슴 뿌듯하게 느껴진다. 시민연대의 운동방법을 싱가포르의 단체와도 연결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담고있다.
전자우편을 받은 즉시 표 국장은 시민연대의 사업계획과 추진 방법, 행정기관과 시민단체, 시민과의 연대방법 등에 대한 답장을 보냈다.
“우리나라의 시민연대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그 의미가 여러 가지 많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싱가포르에 대해 막연하게 깨끗하고 질서 있는 나라, 그리고 아름다움까지는 몰라도 깨끗한 나라, 껌도 못 버리는 나라라고 알고 있어 왔는데 막상 그런 나라조차 아직도 화장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더 많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표 국장이 화장실에 대해 고민과 애착, 그리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 된 것은 아니다.
작년 이맘때 쯤의 일이다. 그가 사는 목동 자택의 현관문 앞에 누군가가 ‘볼일’을 보고 갔다는 아들의 말을 전해 듣고 헐레벌떡 뛰어나가 그 흔적을 발견했던 그는, 얼마간 충격과 함께 깨달음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화장실 문화 개선을 위해 스스로 운동을 벌여 나가기로 결심했다.
“공중화장실의 문제점을 느끼게 되었죠. 얼마나 급했으면 그런 일을 저질렀겠습니까. 그분께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건물 화장실들의 문이 꽁꽁 닫혀 있죠. 외국관광객들 중엔 시내 중심가에서 쇼핑하다가 볼일이 보고 싶으면 호텔로 뛰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아요. 외국인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경험 있지 않나요?”
표 국장은 앞으로 화장실 정화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배려하는 문화’로 자리잡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는 현재 가정주부로서 월급도 없이 거의 ‘봉사’에 가까운 일을 날마다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그를 지지하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가 있고 시민이 있어 힘들거나 외롭지 않다. 회원 수도 다른 민간단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지만 그에겐 날마다 새롭게 변해 가는 시민들의 의식수준, 그리고 화장실의 모습 등을 지켜보는 일이 그저 즐겁다. 현재 100여명 정도에 머물고 있는 회원을 3월까지는 1천명으로 끌어올릴 것을 목표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일 작정이다.
표 국장은 “여기저기서 화장실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말소리만 무성하고 그럴듯한 행사만 갖는 문화라면, 또 많은 돈의 투자만 일삼는 전시행정의 화장실문화 운동이라면 더 이상의 발전을 없을 것”이라며 진정한 시민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한다.
“앞으로 시민연대는 행정기관을 상대로 잘못된 것에 대해 끊임없이 건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건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점검하며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학생이나, 주부 등 모든 시민들에게 언제든지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며 한국의 화장실 문화와 관광산업이 날로 발전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이상민 기자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표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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