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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문연칼럼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 환경 문화 운동

사철나무가 얼어죽는 일도<생각하는 문화공간> 2006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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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11회 작성일 23-01-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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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가 살던 마을은 첩첩 산골 이었다. 화장실이 별도의 헛간 이었기 때문에 작은 것은 요강이라는 이동식 화장실이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배탈이라도 나서 밤중에 변소를 가게 되는 날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오거나 호랑이라도 나올 것 같아서 혼자서 화장실에 가는 것은 감히 엄두도 못 냈고 형이나 어머니가 등불을 들고 같이 나가야 했다.

 

그 당시에는 어찌 그리 호랑이한테 물려간 사람도 많고 귀신한테 혼난 사람들도 많은지 모르겠다. 비록 확인되지도 않고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뒤처리는 지푸라기가 보편적으로 이용되었고 어쩌다가 신문지나 비료포대 종이라도 생기면 그것은 상당한 수준의 화장지였다.

 

초등학교6학년 겨울에 중학교 진학을 하기 위해 학교관사에서 합숙훈련을 받은 일이 있다. 역시 관사와 화장실이 엄청 멀리 떨어져있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서워서 밤에 화장실을 못가고 마루에서 밖으로 향하여 갈겼는데 그 때문에 화단에 담겨있던 사철나무가 얼어 죽는일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다닐때 화장실은 작은 문화공간(?)이었다. 억눌렸던 감정을 그림과 낙서로 분출하는 공간이었고, 유비통신의 근원지가 되기도 했다.

 

화장실과 관련해 안타까운 추억이 있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받을때 화장실은 적어도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의 하나여서 가끔은 취식장소로 애용하기도 했다. 물론 위도 뻥 뚫어지고 칸막이도 엉성한 재래식이었기 때문에 환경자체는 열악했지만 그래도 화장실은 상급자로부터 감시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으면서 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60년대 후반에 입대를 했는데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라 돈이 매우 궁색했다. 군대에서 안전하게 돈을 가지고 있기 위해서는 팬티에 별도의 주머니를 만들거나 책갈피에 숨기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모두 다 용이하지 않아서 우리 어머니께서는 돈에 실을 감아 실패로 만들어 비상금으로 주셨다.

하루는 용돈이 필요해서 그것을 풀어보려고 예의 그 안전한 장소인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면서 풀고 있었다. 그러다 아차 하는순간에 실패를 놓치면서 실패가 그 아까운 돈까지 가지고 천길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허무하고 안타까웠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께서 넉넉지 않은 살림 중에 막내아들 군대에 가서 배곯지 말라고 정성스럽게 마련해준 돈을 허무하게 화장실바닥에 빠트려버렸으니 얼마나 죄송스럽고 가슴이 아팠겠는가? 제대 후에도 나는 어머니속이 상할까봐 결코 그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파트생활에 익숙했던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고향이라도 가면 가장 곤란한 문제가 화장실이었다. 지금은 웬만한 집은 화장실이 두개 이상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의 달동네 에서 아침부터 화장실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이처럼 공포의 대상이고, 불편하고 불결한곳의 대명사였던 화장실! 화장실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치부의 하나였다. 그러던 화장실이 어떻게 이렇게 자랑스런 공간으로 변모했을까? 물론 아직까지 취약한곳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화장실 문화만큼 확실하게 변한 곳도 없는 것 같다.

 

아름답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그리고 자신도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어 그 마음을 산 것일까?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고 있다가 정년퇴직하고 뜻에 맞는 시민단체가 있어 평소 관심분야였던 아파트 단지 공동체 활성화 운동에 참여 하고 있다. 공동주택이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자리잡으면서 극도의 개인주의로 사라진 전래의 이웃사촌 문화를 회복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걱정이 많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시민단체를 기대와 우려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 소변기 앞에 한 발짝 더 가까이 서는 것만으로도 이처럼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지극히 작은 일부터 하나씩 추진해보려고 한다. 우선 내가 사는 동 주변부터 관심을 갖고 꽂을 심는 일부터.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좀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조심스런 자세로 정성을 다하고 있다.

 

 

                                                                                                                 한상남 님/ 녹색아파트연구소장/숙명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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