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화장실문화시민연대 표혜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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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화장실문화시민연대 표혜령 대표<세계일보>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 12년… 남은 희망 새기고 싶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자주 보는 글귀다. 12년째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는 표혜령(61) 화장실문화시민연대(화문연) 대표는 “우리나라 화장실을 빛나게 한 건 내가 아니라 화장실 관리인들과 우리 국민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그분들 대신 이름이 나갈 뿐”이라며 “늘 감사해야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며 말을 잇다 문득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에 있는 화문연에서 만난 표 대표는 얼마 남지 않은 제12회 전국 우수화장실 관리인 시상식 준비로 분주했다. 표 대표는 “1999년 화문연을 발족한 뒤 1주년 기념식 때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며 “화려한 행사보다는 함께 화장실 문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시상식이 12년째 이어져서 기쁘다”며 웃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가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차수 선임기자 ◆왜 하필 ‘화장실’이야?”… “해도 안 될 것”…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표 대표가 화문연을 만든 계기는 우연처럼 찾아왔다. 1998년 녹색소비자연대(녹소연) 이사로 있던 표 대표는 한 중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나오던 중 청소년들이 길거리에서 침을 뱉고 노는 장면을 목격했던 것. 표 대표는 “방금 공공질서에 관한 강연을 들은 아이들의 모습이 이렇다면, 이론을 아무리 설명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면서 고민을 당시 녹소연에서 활동하던 국민대 심문환 교수(법학)에게 털어놨다. 심 교수는 “함부로 침을 뱉는 등 공공질서가 가장 자리 잡히지 않은 곳은 화장실”이라며 “차라리 화장실 문화 개선에 나서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표 대표는 흔쾌히 승낙했다. 첫걸음으로 그는 화장실에 좋은 문구가 들어간 스티커를 붙여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보기로 마음먹었다. 돈이 없어 일단은 개인적으로 모아둔 크리스마스 카드 등 장식을 떼어내어 꾸민 다음 ‘아름답고 깨끗하게 사용해 주세요’, ‘더럽게 사용하면 청소부 아주머니의 눈물이 됩니다’가 적힌 스티커가 일부 화장실에 붙여졌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오히려 스티커에 욕설만 가득 적혀 있었고 이용 실태는 변함이 없었다. 모두가 “해봤자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오기가 생긴 그의 뇌리에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스쳐 지나났다. ‘군자기독신필야’. 서당 훈장을 지내신 외할아버지께서 즐겨 사용하시던 공자의 문구로 ‘홀로 있을 때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뜻의 말이었다. 표 대표는 이 말을 화장실에 접목시켜 보기로 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곧바로 화장실의 이용 실태가 달라지자, 청소 관리인들이 먼저 나서서 스티커를 더 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는 당시 한국관광공사 박충경 부장의 도움을 얻어 스티커 300장을 추가로 제작해 1999년 10월 시청역 부근을 중심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나아가 그는 같은 해 12월 화장실문화시민연대를 설립했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짜리 4층 옥탑방이 그의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마저도 화장실 문화를 고쳐보겠다는 그의 의지에 남편의 도움이 더해져 만들어진 사무실이었다. “왜 하필 화장실이냐, 돈만 까먹는 것 아니냐… 별별 소리를 다 들었죠.” 그는 “1층에 있는 우동가게 냄새가 그대로 올라왔다”며 “6평 남짓한 공간에서 자원봉사자 10여명과 부대끼면서도 이를 악물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화문연의 활동으로 2000년 6월, 서울시도 후원에 나서 스티커 종류는 22가지로 늘어났다. 표 대표는 문구를 전제로 그림과 시, 좋은 이야기 등을 결합해 새로운 스티커를 제작하는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은 딱딱한 형식을 갖춘 진리보다는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내 자신이 보기에도 따뜻하고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그 마음으로 화장실도 잘 이용하도록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업주부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로 28년…겁 없이 시작한 일 표 대표가 처음부터 시민단체에 몸담은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25살, 남편과 결혼해 울산으로 이사했다. 그 뒤 전업주부로 8년을 보내고 있던 표 대표에게 지인이 ‘울산 YMCA 시민중계실장’ 자리를 추천했다. 망설임 끝에 표 대표는 “YMCA라는 병풍이 있으니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시장에서 조개를 팔던 당시 나와 36살 동갑내기였던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연탄장사를 하던 남편과 함께 시부모님 등 일곱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나도 꿈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아주머니는 집안 형편상 초등학교만 겨우 마쳤지만 언젠가 대학공부를 마치고 나처럼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면서 “자신이 꿈을 잃지 않게 늘 읽고 있다는 시집을 보여주는데, 페이지마다 손때가 가득 묻어 있더라”고 말했다. 표 대표는 “나는 그때까지 내가 똑똑하고, 내가 잘 나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그 일을 계기로 표 대표는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자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1983년부터 11년간 울산 YMCA 시민중계실장을 지낸 뒤 서울로 옮겨 전국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신정종합복지관 상담실장, 양천구 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 등을 맡아 1992년과 1994년에는 각각 국무총리 표창과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녹색소비자연대, 한국관광공사 등에서 위원직도 겸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가 머문 자리가 아름답도록 20년만 채울수 있다면 지칠 법도 한 그지만 아직은 할 일이 많단다. “급할 때 찾는 곳이니만큼 화장지가 충분해야 하고, 남녀 화장실과 좌변식·수세식 변기 표식도 눈에 잘 띄고 통일성 있게 바꿔야 합니다.” 그는 “장애인 화장실의 개념도 임산부나 노약자, 어린이 등이 함께 사용하는 ‘더불어화장실’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역시 현실의 벽이 문제다. 당장 사무실 운영난부터 해결해야 한다. 표 대표는 “지난 8월부터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며 “고생하는 직원들의 급여를 삭감하고도 다음 일을 진행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표 대표는 “ARS 전화, 홈페이지 배너광고, 순수후원금 등으로만 운영하다가 최근에는 시아버지 등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자들이 당장 반찬사업을 추진해 운영금을 보태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최소 20년은 채워야 내 할 일을 다한 느낌인데, 이뤄질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표 대표가 원하는 것은 알고 보면 단순하다. 화장실 문구처럼 그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머문 자리가 아름다웠으면 좋겠고, 특히 화문연 대표로서 하고 싶은 일을 끝내고 20주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움과 관심의 손길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서지희 기자 gee@segye.com 입력 2011.10.31 (월) 03:52, 수정 2011.10.31 (월) 0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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