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정지선과 화장실 <생각하는 문화공간> 200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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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정지선과 화장실
임영주님 ㅣ 경향신문 주말팀 기자
요즘 도로 정지선 단속이 한창이다.
출퇴근을 하면서 살펴보면 아직도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다. 하지만 종종 차들이 정지선 앞에서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기분이 꽤 좋아진다.
왜 기분이 좋은 것일까. 반듯하게 서 있는 차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결론은 '존중감'이었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져서 보행자가 지나가는데도 '휙'하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달리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보면 기분이 나쁘다. 일차적으로는 생명이 위험한데다가 보행자의 인격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 상대방이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뜨는 상황과 비슷한 느낌이다.
부실공사로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진 것은 그 곳을 지나쳐 갈 사람들의 생명 가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일인 것처럼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 최근 단속을 계기로 새삼스레 지켜지고 있는 자동차 정지선 지키기는 보행자들이 이전보다 인간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자동차의 위협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걸어 다닐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자동차 정지선 이야기를 꺼낸 것은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는 화장실 상태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필자는 어렸을 때의 화장실을 기억한다. '퍼세식'이라고 불리는 재래화장실을 어렸을 때 사용하기도 했다. 어둡고 더러운 곳의 대명사였던 그 때 화장실은, 들어가자마자 가능한 빨리 나와야 할 무서운 곳이었다.
초등학교 때였던가, 충남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생겼을 때 가족들과 함께 그곳을 찾은 적이 있다. 개관일을 맞춰 몰려든 사람들도 기념관 이전부터 길은 주차장처럼 변했다. 몇 시간을 걸려 기념관에 들어간 후 화장실을 찾았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화장실 기능이 수용할 수 없었는지, 아니면 공사가 부실했던지 시설이 고장 나는 바람에 화장실 바닥이 온통 배출되지 못한 오물로 가득 찼다. 그런 상황에서 관람객들은 품위 있거나 매너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었고 줄을 서기는 커녕 고장 난 변기에 계속 볼 일을 보곤 했다.
어렸을 때의 그런 기억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작은 일 같지만 더러운 화장실과 그 안에서 더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나를 비롯한 거기 있던 사람들의 인격과 가치를 훼손시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자신의 가치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그만큼 낮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생활의 구석구석에서도 삶의 질을 생각하는 노력들이 이어지면서 화장실도 급속도로 좋아졌고 그만큼 삶의 질도 높아졌다.
공공화장실에서도 이제 휴지가 없는 곳이 없고 집 화장실 이상으로 깨끗하게 유지되는 곳도 많다. 깨끗한 화장실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빨리 나오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예전처럼 어둡고 더러운 화장실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그곳에서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삶의 질을 누리게 된 것이다.
또 깨끗한 화장실이니 가능하면 깨끗이 사용하려고 하다 보면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화장실 안에서 한 줄로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이 사용하는 에티켓을 지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생활방식의 대표적인 한 부분이므로 화장실이 깨끗해지고 바람직한 화장실 매너가 자리 잡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 큰 부분을 화려하고 깔끔하게 가꾸는 것은 쉽다. 하고 나면 표시가 크게 나기 때문에 동기부여도 잘되고 그만큼 신경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눈에 띄지 않는 것,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잘 꾸미는 것은 실제로 생활에 배어있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화장실이란 공간이 갈수록 깨끗해지고 그 곳에서의 에티켓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이 높아지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 자신을 과연 얼마만큼 존중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화장실은 지금보다 더욱 좋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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