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음식점 화장실을 보면 음식맛이 보여요 (음식점 화장실 실태조사를 다녀와서) , <생각하는 문화공간> 200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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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화장실문화시민연대에서 나왔습니다!!"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힘차게 외친다. 그러면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들,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네?" 하고 반문을 하신다. 다시 한 번 웃으며 말을 꺼낸다. "예~ 화장실문화시민연대에서, 화장실 실태조사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제서야 사람들의 얼굴에 온갖 표정이 스친다. '화장실? 그런것도 조사하나?' '뭐, 시민연대? 뭐하러 온거지?' '혹시 구청에서 나온건가?' 아마 이런 생각들을 하시나보다. 대뜸 "보건소에서 나왔대~" 하며 소리치시는 분도 있다. 사정을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이해를 해주시지만, 역시 떨떠름하게 맞으시는 분들이 많다. 화장실이란게 조금 부끄러운 공간이니 말이다.
이번에 서울시 보건위생과와 공동으로 실시한 '70평 이상 음식점의 화장실 실태조사' 모니터 요원으로 관악구에 있는 음식점에 다니면서 참 많은 걸 느끼게 되었다. 제일 절실하게 느낀 것은, 아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화장실에 대한 인식이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들어가는 순간 와~ 소리나게 잘 꾸며놓은 곳도 꽤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 화장실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싶었다. 그저 급한 일만 잠깐 해결하고 나오는 곳 정도랄까.
70평이 넘는 음식점이라면 그리 작은 규모는 아닌데도, 화장실에 남여 구분마저 해 놓지 않는 곳도 더러 눈에 띄었다. 환풍기를 설치 안 한 곳은 좀 더 많았다. 음식점이 지하에 있는 경우 환풍기 대신 천정에 구멍을 뚫어놓거나, 그냥 창문만 설치해 놓은 경우도 있었다. 식당 안은 반짝반짝 꾸며놓았어도 정작 화장실은 냄새나고 너저분한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음식을 '먹는 일'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먹은 것을 '내놓는 일' 역시 중요할 텐데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화장실이 지저분한 곳일수록 주인들이 당당하게 '이상없죠?' 하며 묻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깨끗하게 청소해 놓으신 분들은 왠지 모르게 미안해하신다. 뭐랄까, 화장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또 하나 특이했던 것은, 이상하게도 술 같은 것을 파는 곳에서는 화장실 안에 청소도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체크리스트 항목 중 '청소도구함 비치'란에 '없음'이라 표시를 하면서 갸우뚱해하는 나를 보시곤, 주인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 "아이고~ 아가씨 말도 마쇼! 술 마시고 얼매나 싸워대는지, 빗자루나 대걸레가 아주 흉기여, 흉기!" 아하~ 그랬었구나! 그래서 술집엔 빗자루나 대걸레 같은 게 화장실에 없었꾸나!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아저씨의 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표시할 건 표시해야 하는 법. 죄송한 눈길을 건네며 역시 '없음' 란에 표시를 한다. 음식점이나 레스토랑 같은 데는 그나마 낫지만, 밤에 주로 영업을 하는 술집에서는 특히 화장실을 제대로 관리하기가 매우 힘들어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단한 술버릇으로 인해, 한 번 마시면 취해 쓰러질 떄까지 2차, 3차가 계쏙되니, 화장실 역시 난장판이 되기 마련이다. 변기를 붙잡고 토하고, 겨냥 잘 못해서 변기 밖으로 튀고, 고래고래 노래부르는 사람들... 나 역시도 그런 풍경을 익숙하게 접해왔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빗자루를 들고 칼 싸움하는 광경 또한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관리를 잘 못했다고 주인아저씨만 타박할 수도 없는 일이다. 화장실을 쓰는 사람이 그렇게 'Rest Room'이 아닌 '변소'로 쓰는 데야 아저씨가 감당할 재간이 없지 않은가. 화장실에서 변기물도 내려 보고 세면대 수도꼭지도 틀어 보고 하면서 뒤적뒤적 하다가 나오면, 음식점 주인 분과 종업원 분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오신다.
대체 뭘 보고 그렇게 적어가냐고 그러신다. 아무래도 평가 기준이 무척 궁금하실 것이다. 물론 비누가 있고 없고, 세면대에 뜨거운 물이 나오고 안 나오고 하는 객관적인 항목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어떤가' 하는 질문에선 개인적인 느낌에 많이 좌우됐던 것 같다. 그렇다고 꼭 비싼 그림이나 꽃이 있꼬, 알리미 같은 기계가 설치되어 있어야 좋은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니다. 화장실 한 켠에 정성스럽게 써놓은 좋은 글들, 제자리에 가지런히 있는 수건과 비누, 모자라지 않게 충분히 걸어놓은 휴지, 깨끗이 청소된 바닥 등등... 이렇게 사람이 정성스럽게 가꿔놓은 화장실은 비싼 장식을 해 놓지 않아도, 그저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만큼 정성스럽게 화장실에 신경을 쓰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음식도 깨끗하고 맛있게 만드시지 않을까. 당연히 이런 화장실을 만나면, '양호' 보다는 '우수'에 동그라미를 치고 싶어진다. 평소에 화장실이라는 잘 드러나지 않는 공간을 그렇게 알뜰히 보살펴 주신 분들이라면, 아마 이번 실태조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셨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남긴 채 실태조사가 드디어 끝났다. 흔쾌히 화장실 문을 열어 주신 관악구 음식점 종사자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추운데 고생한다며 격려의 말씀 해 주신 분들께도 역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저의 작은 노력이 합쳐져서 우리나라 화장실 환경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보답이 없을 것이다.
끝으로 이번 조사를 마치며, 오늘도 어떤 음식점을 찾을까 고민하시는 많은 분들께 제가 터득한 맛있는 음식점 고르는 비결을 알려드리자면, "음식 주문하시기 전에 화장실에 살짝 가보세요. 화장실이 편안하고 쾌적하게 느껴지신다면, 아무거나 주문해서 드세요. 아마 전부 다 정성스럽고 맛있게 만들어주실 거라고 믿거든요. 화장실을 보면 그 집 음식 맛이 보이거든요!!"
정혜영님, (서울시립대 건축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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