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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7억짜리 대추 모양, 높이 11m 피아노형…'뒷간'의 화려한 변신
등록일 2018-01-24 조회수 14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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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짜리 대추 모양, 높이 11m 피아노형…'뒷간'의 화려한 변신

[중앙일보] 입력 2018.01.23 11:33

 

경북 군위군 의흥면에 가면 6억9500만원을 들여 지은 대추 모양의 화장실이 있다. 대추 주산지라는 사실을 홍보하기 위해 지난 2016년 9월 군위군이 19억1700만원을 들여 지은 공원인 ‘으슬렁 대추정원(면적 9142㎡)’ 안에 있다.
 

경북 군위 7억원 가까운 대추모양 화장실
편백으로 내부 마감하고 고급 세면대 사용
신라 시대 놀이기구 주령구 모양 화장실도
남양주 피아노 화장실은 카페로 착각까지

"화장실 지역 얼굴이자 관광자원 활용가능"
깨끗한, 이색적인 화장실 만들기 앞장 이유
2002년 월드컵 앞두고 화장실 개선에 관심
"예산낭비"라는 일각 비판도 분명 존재

 
지난 16일 오전 찾은 대추공원. 눈앞에 빨간색과 연두색 대추 모양의 건물 두 개가 나타났다. 전시관처럼 보이지만, 빨간색 대추는 일반 화장실, 연두색 대추는 장애인 화장실이다. 화장실(150여㎡) 안으로 들어가자, 황토 타일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천정은 편백으로 마감돼 있다. 대변기가 달린 화장실 문 역시 모두 편백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화장실 특유의 냄새 대신 나무 향이 코를 찔렀다.    

경북 군위군 의흥면 으슬렁 대추정원 내 대추화장실. 6억9500만원의 예산을 들였다. 대충 전시관처럼 보이지만, 화장실이다. 김윤호 기자

경북 군위군 의흥면 으슬렁 대추정원 내 대추화장실. 6억9500만원의 예산을 들였다. 대충 전시관처럼 보이지만, 화장실이다. 김윤호 기자

 
최신형 비데가 설치돼 있고, 손을 씻는 세면대 역시 백화점이나 호텔 화장실에서나 볼법한 대리석이었다. 천정형 온풍기·에어컨까지 달려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화장실 스피커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대추 화장실은 특이하게도 2층이 있다. 화장실 옆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카페처럼 나무로 마감된 텅 빈 곳이 나온다. 대추 전시실·대추 판매점을 입점시킬 곳이라는 게 군위군의 설명이다.  
 
군위군 한 공무원은 “화장실이 예쁘고 잘 지어져서 일부러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사진을 찍으러 외부인이 찾을 정도다”고 했다.      

경주시 보문동에 주령구(酒令具) 모양을 한 화장실. 주령구는 신라시대 놀이기구인 14면체 벌칙 주사위다. 주령구 화장실은 3억4000여만의 예산이 들어갔다. [사진 경주시]

경주시 보문동에 주령구(酒令具) 모양을 한 화장실. 주령구는 신라시대 놀이기구인 14면체 벌칙 주사위다. 주령구 화장실은 3억4000여만의 예산이 들어갔다. [사진 경주시]

 
경주시 보문동에는 ‘주령구(酒令具)’ 모양을 한 화장실 2개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던 신라 시대 동궁과 월지를 재현한 체험공간 ‘동궁원’ 주차장에 있다. 주령구는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 놀이기구인 14면체 벌칙 주사위다. 이 주령구를 모티브로 만든 화장실로, 14면체 주사위 두 개를 이어놓은 모습이다. 남녀 화장실을 합해 73㎡ 크기다. 경주시가 3억4000여만원을 들여 최근 완공했다.    

경주 보문동 동궁원 안에 신라 건국신화인 난생설화를 바탕으로 디자인된 알 화장실의 모습. [사진 경주시]

경주 보문동 동궁원 안에 신라 건국신화인 난생설화를 바탕으로 디자인된 알 화장실의 모습. [사진 경주시]

 
동궁원 안엔 신라 건국신화인 난생설화를 바탕으로 디자인된 ‘알 화장실’도 있다. 말 그대로 동그란 알 모양이다.   

경기도 남양주 화도푸른물센터내 높이 10.9m의 ‘피아노 화장실’은 카페 같다. 뚜껑과 버팀대, 다리, 건반, 의자, 아웃터 림까지 그랜드 피아노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남양주 화도푸른물센터내 높이 10.9m의 ‘피아노 화장실’은 카페 같다. 뚜껑과 버팀대, 다리, 건반, 의자, 아웃터 림까지 그랜드 피아노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남양주 화도푸른물센터내 높이 10.9m의 ‘피아노 화장실’도 이색적이다. 반쯤 열린 뚜껑과 이를 지지하는 버팀대, 잘록한 다리, 건반, 의자 외에 둥근 선의 아웃터 림까지 그랜드 피아노 모양 그대로다. 건물 외관의 대부분을 강화 유리창으로 설계해 카페로 착각할 정도다. 면적은 137㎡다.  
 
화장실은 2층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띵’ ‘띵’ 맑은 건반 음이 들린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맞은편 91.7m 높이에서 쏟아지는 인공 폭포수를 감상할 수 있다. 피아노 화장실은 시예산 5억8420만원을 들여 지난 2007년 준공했다. 지난해에만 25만명이 찾았다.   

경기도 남양주 피아노 화장실에서는 손을 씻으며 맞은편 인공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남양주 피아노 화장실에서는 손을 씻으며 맞은편 인공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김민욱 기자

 
90년대 중반까지 단순히 급한 볼일을 해결해주던 배설 공간 화장실이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써 ‘외도’ 중이다. 호텔 화장실이 아닌 공중 화장실 이야기다. 청결함은 기본이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흐르고, 은은한 향기도 난다. 비데·손 건조기·구강청결제도 갖췄다. 여기에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특색 있는 디자인까지 담아 건축되기까지 했다. 
 
23일 한국화장실협회에 따르면 전국의 공중화장실은 5만5207곳(2015년 말 기준)이다. 이중 공공기관이 3만7530곳으로 가장 많고 공원 5554곳, 관광지 3399곳 등 순이다. 같은 해 기준 행정안전부·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등이 선정한 ‘아름다운 화장실’은 423곳에 이른다. 최소 믿고 볼일을 볼 수 있는 곳이 400곳이 넘는 셈이다.   

경기도 하남시 신장1동 행정복지센터 화장실은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인다. [사진 하남시]

경기도 하남시 신장1동 행정복지센터 화장실은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인다. [사진 하남시]

 
화장실의 외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곳은 지방자치단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로 유명한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표혜령 대표는 “다중 이용시설인 화장실은 그 지역의 공중위생이나 경제·문화 등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며 “나아가 지자체 입장에서는 관광자원으로까지 활용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경기도 하남시는 올해 행정복지센터 화장실을 웬만한 호텔급 수준으로 새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명도를 달리하는 타일과 원형 거울, 도자기 형태의 세면대 등으로 리모델링한다. 쾌적감을 더하려 청소방식은 건식이다. 또 충남 태안군은 안전하고 청결한 화장실을 목표로 오는 4월까지 2억5000만원을 들여 안면 꽃 축제장 등 5곳에 화장실을 새로 짓거나 보수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대관령 옛길에 지난 2007년 1억3000만원을 들여 만든 우주선화장실(58.1㎡)은 블로거들에게 소개된 관광 화장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 당시 붉은 악마 응원모습. [중앙포토]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 당시 붉은 악마 응원모습. [중앙포토]

 
국내 화장실의 '외도'는 90년대 후반 이뤄졌다. 당시 2000년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2001년 한국방문의 해,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세계적인 행사를 앞두고 비위생적인 화장실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96년 5월 31일 피파(FIFA) 집행위원회에서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가 결정되자 일본의 청결한 화장실 등과 비교되면서다.
 
월드컵 개최도시 중 한 곳이었던 수원시는 97년 3월 화장실 정비계획을 세웠다. 이후 교수와 미술가·건축설계사 등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명품 화장실 확산운동에 나섰다. 월드컵 개최도시임을 상징하는 축구공화장실, 저수지를 풍경을 바라보며 근심을 해결할 수 있는 밧딧불이 화장실 등이 들어섰다. 당시 시장이 ‘미스터 토일렛’(Mr.Toilet) 고(故) 심재덕 세계화장실협회 초대 회장이다.  

고(故) 심재덕 세계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이 지은 화장실 모양의 집 해우재(解憂齋). 현재는 화장실 박물관이다. [사진 해우재 박물관]

고(故) 심재덕 세계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이 지은 화장실 모양의 집 해우재(解憂齋). 현재는 화장실 박물관이다. [사진 해우재 박물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녹색소비자연대는 99년 서울 강남·서대문·종로·중구내 공중화장실 4800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0곳 중 7곳이 불결·불량·불편·불쾌·불안 등 오불(五不) 상태로 나타났다. 그해 말 화장실문화시민연대가 출범했다. 같은 해 한국화장실문화협회(현 한국화장실협회)도 창립했다. 이후 한국의 화장실 문화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 외신은 이런 한국 화장실의 변화를 ‘혁명’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1958년 지어진 수원시 팔달구 매산시장 내 제2호 공동변소. [사진 해우재 박물관]

1958년 지어진 수원시 팔달구 매산시장 내 제2호 공동변소. [사진 해우재 박물관]

1999년 열린 제1회 아름다운화장실 대상을 수상한 수원 반딧불이 화장실. 40년만에 공중화장실이 이렇게 변했다. [사진 수원시]

1999년 열린 제1회 아름다운화장실 대상을 수상한 수원 반딧불이 화장실. 40년만에 공중화장실이 이렇게 변했다. [사진 수원시]

 
화장실 꾸미기를 탐탁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깔끔하게만 하고 복지 예산 등으로 돌려쓰자는 의견이다. 서울 종로구 북촌에 2016년 4월 연 북촌마을안내소(연면적 150㎡)는 계획 당시 호화 논란에 휩싸였었다. 길이 35m의 옹벽과 낡은 화장실 등을 부수고 안내소를 새로 짓는 사업에 대해 지역에서는 “10억 짜리 화장실”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인터넷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부산의 한 여성전용 화장실(예산 3억2700만원)내 설치한 TV가 논란이 됐다. 남양주 수락산 등산로 입구 달팽이화장실은 샤워·운동시설까지 갖춰 지나치게 호화롭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근래 구미 경실련 사무국장은 “일부 지자체에서 막대한 세금을 들여 이용자가 별로 없는 호화 화장실을 만들기도 한다”며 “제대로 활용이 안 되는 공공시설물을 만드는 건데 이제 공공시설물, 공공조형물을 만들 때만이라도 세금 낭비를 막을 정책 실명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원·안동=김민욱·김윤호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