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신청

보도자료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 환경 문화 운동

[국민일보]화장실 문화 홍보대사 크리스티나씨와의 수다 “저, 화장실에 빠졌어요”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92회 작성일 17-05-18 13:49

본문

화장실 문화 홍보대사 크리스티나씨와의 수다 “저, 화장실에 빠졌어요”

[2010.11.24 19:02]

101125_34_1.jpg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는 말 아시죠. 그런데 아름다운 곳 뒤에는 보이진 않는 분들의 땀방울이 묻어 있다는 거 잊으면 안돼요. 한 달에 80∼90만원밖에 받지 못하지만, 이 분들의 땀방울은 돈으로 따질 수 없어요. 저는 그래서 손을 씻을 때마다 이분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아요.”

 


미녀는 화장실을 좋아한다? KBS 2TV 오락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에서 이색 토크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탈리아 미녀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30)씨. 그녀가 최근 서울시청 별관 후생동 대강당 4층에서 열린 제11회 화장실문화시민연대(대표 표혜령·서대문중앙교회 집사) 우수 화장실 관리인 시상식장에서 홍보대사 자격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온 크리스티나입니다. TV 방송도 하구요. 한국 사람과 결혼 했어요. 그런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한국의 공중 화장실이에요. 정말, 한국 화장실이 아름답고 깨끗했어요.”

이날 크리스티나씨는 특유의 메조소프라노 톤의 통통 튀는 목소리와 고 앙드레김 스타일의 느린 목소리로 ‘화장실 예찬론’을 폈다. 400여명의 시민들은 따스한 박수로 화답했다.

그녀의 소망은 법률가였다. 유럽공동체(EU) 본부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음악과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가문에서 자란 크리스티나는 어릴 때부터 긍정적인 태도를 몸에 익혔다. 음악을 좋아했다. 하지만 음치라 예술 분야보다는 법학 등 딱딱한 학문을 더 좋아했다.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침내 2005년 밀라노가톨릭대학원에서 국제법학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이듬해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공동체(EU) 본부 입성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그만 치유 안 되는 병에 걸렸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자리를 얻었음에도 가슴 한 쪽이 뻥 뚫린 듯한 고통이었다. 상사병. 1년 전 이탈리아로 유학 온 세 살 위의 한 동양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부터다. 갈색 눈과 검고 긴 머리카락의 김현준(33)씨. 그는 그녀로부터 이탈리아어를 배웠다. 김씨는 성악가로 경기도 의왕 경기중앙교회(김상익 목사)에서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으며 목원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마치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흑기사였죠. 공부만 하던 저는 예술적 감흥과 달콤한 미소, 친절한 매너를 잃지 않는 김씨가 맘에 들었어요. 당시엔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몰랐었죠.”

4년 전 여름 현준씨가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크리스티나는 충격을 받았다. “미친 짓이다. 한국은 위험한 분단국가야. 사랑 때문에 평생을 보장받는 직장을 포기하다니.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야.”

 


직장 상사는 떠나는 즉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극구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역시 꿈은 이루어졌다. 2007년 12월 1일. 마침내 두 사람은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부부가 됐다. TV에 출연한 것은 시어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 어느 날, 고부가 함께 TV를 시청하는데 시어머니가 한마디 툭 던진 것이 계기가 됐다.

‘미수다’ 출연과는 별도로 그는 학구열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국제법 전공을 살려 가톨릭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서울대에서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서울 역삼1동 주민센터에서 외국인을 위해 마련된 글로벌 빌리지 역삼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 한국 아줌마가 다 됐다. 지난 추석에는 송편을 만들어 소외받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가끔씩 백설기를 만들어 이웃 동네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전한다. 김장교실을 열어 맛있는 김치도 나눠줬다.

크리스티나씨는 단 몇 초도 슬픈 표정이나 어두운 모습을 짓지 않았다. 시종일관 행복한 미소를 띠었다. 변치 않는 믿음생활이 비결이라고 했다.

글 윤중식 기자·사진 김지훈 기자 yunjs@kmi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