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아침 편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캠페인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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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인 1997년의 일이다. 길에서 침 뱉기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얼마 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만든 계기가 되었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사였던 나는 회의 안건으로 "침 뱉지 않기 국민운동이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 "침도 침이지만 화장실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2000년 아셈회의, 2001년 관광의 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둔 시점이다. 특히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열리는데 일본과 우리의 화장실은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그 뒤 무엇에 홀렸는지, 당시 대학교 1학년이던 딸의 결혼 자금으로 20년간 모아온 돈으로 '화장실 바꾸기 시민운동'에 나섰다.
처음에는 화장실에 침을 뱉거나 낙서하지 말자는 스티커로 캠페인을 시작했다. 서울시청역 화장실에 '침 뱉지 마세요'라는 직설적 표현 대신 '깨끗이 사용하세요'라고 써서 붙였더니 얼마 뒤 그 옆에 '너네나 잘해 이것들아'라는 식의 낙서가 돌아왔다. 두 번째로 '청소하는 분 울리지 마세요'라는 스티커를 붙이자 '너희들이 뭔데'라는 낙서가 답으로 돌아왔다.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소녀 시절 서당 훈장님이셨던 외할아버지가 나무 상자로 만든 책상에 써 붙여주신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란 문구가 떠올랐다. '홀로 있을 때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공자님 말씀인데, 풀이하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당시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공부하는 자리 하나 깨끗이 할 줄 모르면 큰 사람이 못 된다"는 꾸중을 들은 기억은 있다.
스티커마다 '퇴짜' 맞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세 번째 스티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를 만들어 붙였다. 이상한 낙서와 욕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스티커 좀 보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우회적 표현에 공감한 것 아닐까 느꼈다. 대전의 어느 대학 교수님은 아버님 장례를 마치고 공원묘지 화장실에 갔는데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문구를 보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고 했다. 그는 "나도 제자에게 더 좋은 스승, 가족에게 더 좋은 아버지, 그리고 좋은 이웃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중국 인민대학 중어중문학과의 한 교수는 이런 글을 썼다. "한국 화장실에 가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글이 있다. 그런데 중국 내 고향 화장실에는 '여기에 쓰레기 버리면 자손이 끊어지고 멸하리라'라고 써있다. 한국에선 그 글귀가 화장실 문화를 바꾸는 씨앗이 되고 있다." 나는 뿌듯했다.
단체 설립 1주년 되던 날, 깨끗한 화장실을 위해 수고하시는 전국의 청소 관리인들을 위로하고자 우수 관리인을 시상하기로 했다. 올해로 18회째다. 첫 시상식은 주변 도움 없이 시작하였기에 상품도 시동생에게 부탁한 수건, 유한킴벌리 티슈, 그리고 떡과 음료수만 준비한 초라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날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에서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어제 어머니께서 청소 아줌마 상 주는 행사가 있다며 서울로 가신다기에 우리 딸 셋이 '그거 받아 뭐에 쓰냐'고 말렸는데도 극구 다녀오셨어요. 돌아오신 어머니가 우리들을 불러 막걸리 한 잔씩 따라주시며 '엄마는 이제 그냥 화장실 청소부가 아니라, 행정 서비스를 하는 우리 지역 관광산업 일꾼이다.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하셨어요. 상품을 보고 웃음은 났지만 어머니에게 용기와 힘을 주신 당신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20년간 가장 무서웠던 말이 있다. 젊은 간사들이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라고 할 때다. 다른 직장을 구했다는 뜻이다. 열악한 환경과 적은 보수를 어찌어찌 견뎠지만 더는 어렵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동안 정부가 네 번이나 바뀌었다. 화장실을 가꾸어온 분들, 이 운동에 몸담아 주셨던 분들, 그리고 공감하고 동참해주신 분들 모두가 아름답다. 이번에 나라 살림을 맡은 분들은 "우리 삶을 더 따뜻하게, 행복하게, 윤기나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훗날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 역시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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