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실은 더 이상 원시적이고 생리적인 배설의 욕구만 해결하는 장소가 아닙니다.목욕도하고 세탁도 하는 생활의 공간이고 신문과 책을 읽는 문화 공간인 동시에 사색과 명상의 공간 아닙니까. 공중화장실을 보면 그 나라 시민의 의식 수준을 알 수 있어요. 화장실은 그 나라 문화의 바로 미터입니다." 화장실 문화 시민연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표혜령 사무국장(50세)의 말이다. 이 단체로 부터 '관리불량' 판정을 받은 공중화장실은 즉시 고발 조치된다. 상급기관으로부터 시정조치 명령을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1개월 이내에 이 단체에 개선되기 전과 후의 사진과 함께 처리 결과를 회신해야 한다. 만약 그래도 시정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언론에 통보하여 기사화한다. 그러니' 불량판정'을 받은 공중 화장실은 개선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한다. "미운 화장실만 신고 받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화장실로 추천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아요." 표 사무국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우리 화장실은 너무나 불량합니다. 어느 외국인 여자 관광객이 서울시내 화장실을 한 시간 이상 찾다가 울어벼렸 다는 신문 기사가 생각납니다. 또 외국 관광객의 여론을 조사한 결과 화장실 불편이 언어 불편ㆍ교통불편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배설물을 받아 주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우리는 그것에 감사해야 하고 매일 절해야 합니 다." 표 사무국장의 화장실에 대한 애정은 이처럼 각별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공중 화장실은 그 나라 문화의 바로미터입니다.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시민운동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화장실을 쾌적하고 깨끗하게 만들면 각종 사회문제도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리라는 생각에서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필이며 가장 더러운(?)화장실을 시민운동의 대상으로 삼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화장실 문화 시민 연대는 작년에 서울시 4대문 안에 있는 공중 화장실 2980개 소의 실태를 조사했다. 이 실태조사에는 자원봉사자60여 명이 동원되었고 조사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다. 뒤이어 초등학교 화장실 537개소 , 공중 화장실 535개소, 한강변 605개 소 이동화장실, 재래 시장 화장실 198개소의 실태를 조사했다. 장애인 화장대 설치, 화장지 비치, 비누 비치, 시설상태, 관리상태, 악취상태 등을 조사했고 각 항목마다 점수를 매겨 평 가한 뒤 백서를 만들었다. " 그 결과는 한마디로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쾌적하고 깨끗한 화장실을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서로에 대 한 배려가 있는 성숙된 시민사회일 겁니다. 저희들이 하고 있는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자'가 아니라 성숙된 문화시민 사회를 만드는데 있습니다." 성숙된 문화 시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우문일 수도 있는 질문을 던져 봤다.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을 외국인에게 보이기에 부끄러우니 이제는 좀 바꿔 보자는 식의 문제 의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에서 얻는 여유가 생활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화장실문화운동을 대대적으로 펼 쳐야 합니다." 화장실 문화 시민연대는 최근에 서울시와 연합하여 지하철 화장실 230개소의 실태를 조사한 뒤 등급을 매겼다. "지하철 화장실 실태를 조사하다 보니까 청소원들 월급이 너무 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그 분들이야말로 이 사 회에 반드시 필요한 분들이 아닙니까. 그 분들이 없는 화장실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끔찍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번에 표혜령 국장은 지하철 화장실을 광고 게시 장소로 활요하고, 그 광고료 수입으로 지하철 화장실 청소원 들의 임금을 올려 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철 공사와 도시 철고 공사의 승인도 얻어 냈으니 이제 곧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거라고 한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가 여기까지 발전한 것은 불평 한마디 없이 맡은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숨은 일꾼들이 있기 때문이 다. 김시애 부장(45세)을 비롯해서 이현진 간사(27세)와 김정희 간사(24세), 그리고 자원 봉사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화장실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배설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장소가 아닙니다. 명실공히 휴식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서 자리 매김돼야 합니다." 표혜령 사무국장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한다.
글 박석근. 사진 이갑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