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아주머니 감동시킨 '화장실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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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부터 깨끗해진 화장실을 접하게 됐다. 청결하지 못하여 들어가기조차 싫었던 기존의 화장실 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했다. 물론 아직도 낙후된 화장실이 적지 않지만, 음악이 흐르고, 예쁜 그림이 걸려 있는 이곳은 ‘문화의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화장실 문화수준의 전반적인 상승은 다음의 문구와 그 변화를 같이 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이 문구를 제안했고, 화장실을 가꾸는 데 힘쓰고 있는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이하 화문연)의 표혜령 대표를 지난 8일 만나봤다.
준비해간 질문지를 꺼내기도 전에 표 대표는 억울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보여줬다. 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광고지였다. 그런데 그 광고지 위에 버젓이 ‘남자 마사지사’ 광고가 낯 뜨겁게 붙어있었다. ‘동성연애까지 끝내줘요’라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퇴폐 마사지 광고였다. 표 대표는 “이게 말이 되느냐, 우리(화문연)가 3300여장의 광고지를 붙였는데, 이런 불법 마사지광고가 몇 백 장에 달한다. 너무 화가 난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마사지 광고에 적힌 두 번호 중 한 번호에 전화를 해봤다. “남자 마사지 맞죠?”라고 묻자 그들은 “네, 맞습니다. 고객님 어디시죠?”라 응수했다. 이어 신분을 밝히고 그들의 불법광고지 부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전화를 잘못 걸었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고객님 어디시죠?”라며 친절한(?) 안내를 하던 그들은 1분 만에 태도를 바꾸어 남자마사지사 부르는 곳이 아니라며 전화를 끊었다.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하자 받지 않았다. 다른 번호는 전화해보니 없는 번호로 확인됐다.
표 대표는 “그들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광고를 낸 후, 전화를 수시로 없애고 다시 개통하고 하는 편법을 자행하기에 경찰 측에서도 단속이 어렵다고 한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런 불법광고 부착은 화문연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것을 물론 광고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대항병원 입장에서도 달갑지 못한 일이다. 이런 분통 터지고 억울한 일을 꼭 소개해 달라는 표 대표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인 후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시민단체가 다루는 영역은 실로 다양한데, 그 중에 ‘화장실’을 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1997년 복지관 상담실장 재직 당시, 길을 지나가던 중 고등학생들이 50대 아저씨 등 뒤에서 침방울을 뱉는 게임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저씨 등 중앙에 맞히면 이기는 게임인 듯했다. 10년 후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될 수도 있는 학생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고, ‘침 안 뱉기 운동’을 준비했다. 1999년 녹색소비자연대 이사회에서 침 안 뱉기 운동에 대한 안건을 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이사가 화장실에서 침을 많이 뱉는다는 말을 해서 '아! 이거다' 싶었다. 그리하여 화장실 실태조사를 해보니 '5불(불결, 불량, 불편, 불쾌, 불안)' 상태였다. 또한 당시는 2000년 ASEM 회의, 2001년 한국관광의 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목전에 둔 상황이어서 더욱 절실하게,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며 시작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맨 처음에는 ‘깨끗이 사용하세요’라는 문구의 스티커를 화장실에 부착했다.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은 별로 효과 없을 거라 했지만 부딪혀본다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붙였다. 시청역 지하철 화장실에 붙인 적이 있는데 다음 날 가보니 '너네나 깨끗이 해'라는 낙서가 밑에 쓰여 있었다. 두 번째로 고안한 문구는 ‘청소 아주머니 울리지 마세요’였다. 이 역시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항상 감명 깊게 생각하고 있던 공자의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基獨也), 군자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도록 행동한다’가 떠올랐다. 혼자 있을 때 깨끗이 하는 사람이 진정 큰 사람이 된다는 공자의 말씀을 살짝 변형해 만들게 됐다. 처음에 스티커 부착을 말리던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침 뱉는 숫자가 확 줄었다며 스티커를 더 달라 부탁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스티커는 대성공이었다."
-화문연이 하는 일은 정말 광범위한데, 주된 사업으로 어떤 것을 뽑을 수 있나.
"우선적으로 낙후된 화장실에 대한 시설 개·보수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이다. 화장실 시설이 ‘하드웨어’라면 우리는 이용문화 스티커를 통해 사용자의 시민의식을 고양하는 ‘소프트웨어’를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스티커를 통한 캠페인, 학생들 교육, 관리인 교육, 공무원 교육도 하고 있다.
또한 1년에 한번씩 ‘관리인 시상식’을 거행한다. 상장과 간소한 선물을 드리는 행사이다. 상장을 드리면서 나는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손을 하나씩 잡고 이야기한다. '아주머니들은 단순히 청소하는 아줌마가 아니라 관광산업의 역군입니다.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시고, 다른 사람한테 주눅 들지 말고 떳떳하세요.'
그날(관리인 시상식) 화문연 홈페이지에 한 글이 올라왔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이번 관리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청소원의 아들이 쓴 글이었다. 전북 군산에서 서울까지 상을 받으러 올라가는 어머니께 '화장실 청소가 뭐 자랑이라고 거기까지 가시느냐'고 아들은 말했다고 한다. 시상식 후 어머니가 아들을 집으로 불러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한다고 부끄러워할 거 하나도 없다. 내가 화장실을 가꿈으로써 군산시가 빛나게 된다. 오늘부터 엄마는 관광산업의 일꾼이다. 시장이 된 기분으로 일할 거다'라고 말했다며 아들은 상장 글귀 하나하나를 읽으며 가슴으로 울었다고 했다. 이 글을 읽고 나도 울고 화문연 식구들 모두가 울었다."
-지하철역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제대로 되어 있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1~4호선을 관리하는 서울메트로와 5~8호선을 담당하는 도시철도공사의 상황이 조금 다르다. 1~4호선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다. 화장실의 수 자체도 부족하고 장소도 협소한 곳이 많아 장애인용 화장실 없는 것에 대해서 일방적인 비난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고 서울메트로, 도시철도에 지속적으로 장애인용화장실 개·보수를 요구하고 있다.
신설되는 곳에 대해서 명칭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인 화장실’이라는 이름보다 좀 더 포괄적인 ‘가족 화장실’로의 변경을 주장하고 있으며 장애인협회의 동의 아래 일부 화장실에서는 이 명칭 사용이 추진되고 있다. 일본은 ‘누구나 화장실’이라는 명칭을 쓰는 데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아직도 백화점이나 공공장소에서는, 여자화장실 앞에 많은 여성 이용자들이 기다랗게 줄서고 있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탄력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예술문화공간은 대체적으로 여성 이용자의 비율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여성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상암월드컵 화장실을 조사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남성이용자들이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관계자에게 입장한 남녀 성비를 물어보니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7대 3 정도였다. 남녀 비율이 다르면 화장실의 공간이나 개수의 비율도 다르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시적으로 고객이 몰리는 해수욕장 등 관광지의 경우는, 매년 몇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 것만 자랑할 게 아니라 그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이동화장실을 준비하는 지혜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국내 화장실문화가 많이 발전해서 외국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고 들었다. 선진국들과 비교해서는 국내 화장실문화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일본보다는 다소 떨어지지만 다른 선진국들보다 ‘감성적인 부분’이 우수하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시와 꽃 그림을 볼 수 있는 점 등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화장실 관련 단체가 15년이나 앞서고, 화장실 수준의 지역별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유럽은 대부분의 화장실이 ‘유료’이고 미국은 매 지하철마다 화장실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각 나라의 문화적·사회적 배경이 상이하기에 그들과 등가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화문연의 앞으로 계획은.
"대한민국의 브랜드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화장실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다. 화장실 개선 사업을 홍보하고, 화장실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자연스레 알릴 수 있도록 화문연 대학생 서포터즈단도 계획중이다. 이 외에도 ‘문화’라는 폭 넓은 주제로 아카데미도 준비할 예정이다. 이런 일련의 프로젝트들이 모두 화장실 수준 제고에 크게 이바지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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