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한국서 꽃피는 화장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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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한국서 꽃피는 화장실 문화
여기 화장실 맞아?
서은영기자 supia927@sed.co.kr
그래픽=이근길기자
오는 11월21일 코엑스에서는 세계화장실협회(World Toilet Association Assembly)가 창립총회를 연다.
다음날인 22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국제 화장실ㆍ욕실엑스포 2007'이 사흘간 열린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연이은 화장실 행사와 관련 "도대체 누가 혐오스런 화장실을 주제로 한 국제적인 모임을 만드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누구든 먹은 것이 있다면 몸 밖으로 내보내야 우리 몸은 정상적으로 유지가 된다. 그래서 화장실은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공간이다.
그렇다고 화장실이 단순히 배설만을 위한 공간도 아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삼상(三上)이라고 하여 인간의 생각이 활발해지는 장소를 세 가지 꼽았는데 그 것들은 잠자리에서의 침상(寢上), 말 위에서의 마상(馬上)과 더불어 변기 위의 측상(厠上)이다.
하루 10여분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문화 섭취의 공간'이라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은 화장실은 창피하고 더러운 장소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식사중 화장실 얘기를 하는 것은 어느 문화권에서든 큰 실례다.
이에 대해 김우태 세계화장실협회(WTAA)창립총회 조직위원회 대외협력국장은 "먹는 것과 내보내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반문한다.
화장실에 가는 것 역시 식사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의 일부라고 이해하면 화장실 얘기를 꺼리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감출수록 더러워질 수밖에 없고 더 나아질 수 없는 것"이라며 "이제 화장실 얘기를 공론화 해 화장실 환경을 개선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 때가 됐다"고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겐 화장실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도 있다. 화장실은 인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 시설이기 때문이다.
올해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총회와 '국제화장실ㆍ욕실 엑스포 2007'은 화장실을 생활공간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생활 중심공간으로서 화장실의 의미를 제안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김 국장은 "세계 화장실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한국의 역할을 국내에 알려 우리 국민들이 화장실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자, 이제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의 화장실은 어떤가?
당신의 화장실이 '좋은 화장실'을 규정하는 기준(문화ㆍ휴식ㆍ배려가 있는 화장실)에 부합하는지 이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해보는 일도 흥미로울 듯하다.
"화장실은 문화 공간" 의식 대전환
요즘 화장실은 문화공간이다.
단지 화장실에 그림과 음악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화장실 자체가 예술 작품처럼 보는 이들에게 심미적 즐거움을 주게 됐다는 의미다.
독특한 외관의 공중화장실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경. 2002월드컵 유치가 계기가 됐다. 공동 개최국인 일본 보다 한국이 어떤 점에서 앞서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정부 차원에서 깨끗한 공공화장실을 늘려 경쟁력을 갖추자는 결론을 내렸다.
화장실 관련 시민단체들의 활발한 활동도 문화 화장실들이 생겨나는데 한 몫을 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등의 시민단체들이 생겨났고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익숙한 문구의 스티커를 화장실 문에서 발견할 수 있던 것도 이 때부터다.
2002 월드컵은 끝났지만 지자체들의 이색 화장실 짓기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외관이 독특한 화장실들은 그 지역 명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지역 홍보 효과도 누릴 수 있을 뿐더러 '아름다운 화장실'로 선정되면 행정자치부가 화장실 개선 사업을 위한 추가 예산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색 화장실로 유명세를 탄 몇몇 지자체들은 "이젠 화장실도 우리 지역의 관광명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다. 다음은 각 지자체가 내세우는 간판급 화장실들이다.
▦그랜드 피아노 화장실=남양주시는 지난 8월말 화도 하수처리장에 높이 10.9m, 가로 18.81m 규모의 그랜드 피아노 모양의 화장실을 세웠다.
피아노 화장실은 남양주시가 국내 최초로 개최한 '이색 화장실 설계 디자인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이곳은 건물 외관도 아름답지만 내부 역시 큰 창으로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고, 파우더룸, 휴게실 등의 휴식 공간을 설치해 이용자들의 편익을 고려했다.
대형 창을 통해 화장실 뒤편 인공폭포가 보이고 따로 마련된 휴게실에 앉아 하수처리과정도 지켜볼 수 있어 아이들에겐 체험학습 장소로도 인기가 좋다.
그랜드 피아노 화장실은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준비위원회가 발간하는 화보집 '전문가가 추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화장실 30선'에 소개될 예정이다.
▦축구공 화장실=수원시에는 축구공 모양의 화장실이 두 곳 있다.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맞은편 야외음악당과 수원 월드컵 경기장 공공화장실이다.
2002년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의 우승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두 화장실은 월드컵 당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기념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특히 수원 월드컵경기장 화장실은 올해 5월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총회 준비위원회 참석차 방한한 마를롱 도나동(26) 브라질 빌례냐시 시장이 축구 강국인 자신의 나라에도 같은 모양의 화장실을 짓고 싶다고 밝혀 설계 도면이 수출되기도 했다.
▦직지문화공원 화장실=경북 김천시는 2004년 직지문화공원을 조성하면서 원형 갓 화장실과 쌍무지개 화장실 등 이색적인 외관의 화장실을 설치했다.
두 곳 모두 지난 해 문화운동시민협의회가 주관하는 '아름다운 화장실'에 선정된 바 있다.
갓 모양의 지붕이 이색적인 원형 갓 화장실은 특수유리에 훈민정음 언해본을 새겨 외벽을 장식했다. 또 두 줄기의 무지개가 지붕을 이루는 쌍무지개 화장실은 외벽에 컬러유리를 사용해 사계절 자연을 새겨넣었다.
두 화장실 내부에는 직지사 등 김천시의 관광문화유산 사진과 그림이 벽화로 장식돼 있는데 간략한 소개도 함께 있어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도 있다.
▦첨단 유비쿼터스 화장실=서울시가 올해 뚝섬과 여의도에 1개소씩 설치한 유비쿼터스 화장실은 겉만 보면 일반 이동식 화장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변기마다 설치된 센서가 이용자 수를 감지하고 내부 온도는 물론 전기ㆍ물 사용량까지 매 시간 체크해 담당자에게 알려주는 최첨단 화장실이다. 센서가 화장실 설비 이상을 알리면 관리자는 모니터로 상황을 확인하고 바로 대응할 수 있다. 또 휴지나 비누 등의 물품이 떨어진 경우 바로 관리자에게 문자 메시지가 전송 된다.
한강시민공원 내에 있는 121개소 공공화장실 관리를 맡고 있는 김보선 서울시한강사업본부 환경과 주임은 "현재 두 곳만 시범적으로 유비쿼터스 화장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유비쿼터스 화장실 수를 늘릴 계획"이라며 "매 시간 컴퓨터로 화장실 상황을 모니터 해 화장실을 늘 깨끗하게 관리 할 수 있어 시민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최근엔 유비쿼터스 기술 도입까지
화장실이 왜 변해야 하는가
옛말에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고 했다. 냄새 나고 더러운 화장실은 감춰둬야 마땅한 혐오시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화장실을 혐오시설 보다는 생활공간의 일부로 여기고 집을 지을 때도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이는 공중화장실이나 사설화장실도 예외가 아니다.
40대 가장 이 모 씨는 지난 해 자택 화장실을 리모델링 했다. 요즘은 어딜 가도 세련된 인테리어에 깔끔하게 정돈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데 화장실이 그 수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부인과 아이들이 하루 중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는 것을 감안, 화장실을 밝고 아늑한 장소로 꾸미는데 주안점을 뒀다.
벽과 바닥은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베이지색 타일로 마감을 했고 창문을 크게 내 햇볕이 잘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또 변기에 앉아 있을 때 풍경이 보기 좋도록 창밖에 나무를 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씨는 “화장실 리모델링 후 찾아오는 손님들 마다 화장실을 보고 감탄을 한다”며 “화장실 수준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수준을 말하는 것 같아 관리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김우태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총회 조직위원회 대외협력국장은 이 같은 현상을 생활 수준의 변화와 연결시킨다. 김 국장은 “화장실은 문화와 인권의 문제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위생과 문화 수준을 위해 더 나은 화장실을 원하게 되는 것”이라며 “집에서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든 내 집 화장실 만큼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어하게 됐고 그런 요구가 공중화장실 수준에도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는 화장실의 수준이 개인 혹은 국가의 이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불편한 것’중 화장실 문제를 1위로 꼽았지만 열악한 공중 화장실 수준은 나아질 줄 몰랐다.
하지만 월드컵 등 몇 차례의 국제 행사를 치르며 한국의 공중화장실 수준은 전세계가 놀랄 만큼 선진화됐고 외신은 이를 두고 ‘화장실 혁명(Toilet Revolution)’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화장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도 덩달아 높아졌다. 처음엔 주인도 없는 공중화장실에 분수대를 설치하고 그림을 거는 것이 사치라고 비판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이제 문화와 휴식이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정미경 세계화장실협회 대외협력팀장은 이를 두고 “화장실이 배설의 공간에서 휴식 공간으로, 폐쇄공간에서 개방공간으로, 혐오시설에서 문화시설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화장실 이용 문화도 바뀌었다. 단적인 예로 예전엔 화장실에 있는 휴지를 가져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정미경 팀장은 “수 차례의 대형 국제 대회를 치르면서 시설의 선진화와 이용자들의 태도 선진화가 동시에 이뤄졌다”며 “한국 화장실 혁명(Korea Toilet Revolution)은 바로 정부와 NGO, 국민 삼자가 함께 이루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 코엑스 '꽃이 있는 나루'
코엑스가 지난 2월 설치한 ‘꽃이 있는 나루’ 화장실 역시 화장실에 대한 이 같은 인식변화를 반영한 곳 중 하나다.
’꽃이 있는 나루’라는 화장실 이름은 항상 생화를 비치해 향기를 더한다는 데서 비롯된 것인데 화장실에 이름을 붙여 이용자들에게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고 화장실이 하나의 개별적인 공간으로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
화장실 내부는 이용 시간이 남성에 비해 1.5배 정도 긴 여성들을 충분히 배려해 설계됐다. 여자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에 비해 4배 이상 넓은 공간을 사용하도록 했고 가변식 벽장을 설치해 상황에 따라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 크기를 달리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여자화장실에는 기저귀 갈이용 받침대와 파우더룸 등이 있고 화장실 바깥에는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오수영 코엑스 홍보팀 차장은 “내국인들 뿐만 아니라 국빈급의 외국인들까지 자주 찾는 곳이다 보니 한국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화장실 수준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코엑?화장실은 코엑스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리모델링을 해 더 나은 수준의 화장실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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