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화장실문화 만들기> 90년대 民·官함께 변혁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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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화장실문화 만들기>
90년대 民·官함께 변혁 이끌어
<2> 한국 화장실 문화의 역사와 특징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뒷간’‘측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인의 전통 의식에서 화장실은 멀리 두고 싶은 곳이었다.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농토에 필요한 사람의 배설물을 귀하게 여겼으나, 화장실 자체를 소중히 여기진 않았다. 20세기에 근대화가 진행하면서 도시 인구가 급속히 늘었지만 배설물을 처리하는 공간인 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했다. 뿐 만 아니라 대부분 불결했다. 올림픽을 유치한 1980년대 이후로 화장실문화 개선 운동이 관 주도로 펼쳐진 것은 변화의 서막이었다. 1990년대 이후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들이 나서 ‘아름다운 화장실’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했다. 이로써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악취와 오물의 대명사로 외국관광객들의 원성을 샀던 한국의 화장실은 쾌적한 배설공간으로서 뿐 만 아니라 독서와 음악·미술감상을 겸한 사색, 휴식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밖에서 놀다가도 용변은 꼭 집에서 = 한국의 화장실은 인분을 모아서 농사에 활용하는 분양법(糞壤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연히 잿간 형태의 화장실이 발전했다. 극히 최근까지도 농촌 지역의 사람들이 용변은 꼭 집에서 보려고 한 것은 이런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등지에 남아 있는 똥돼지 변소도 같은 맥락이다.
청동기시대에 요강이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의 요강이 출토된 적이 있다. 요강은 형태가 변화하면서 1960~1970년대까지 혼수품으로 선호했으나, 현재는 일반 가정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고려시대의 화장실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조선시대엔 궁중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은 궁중에서 요강에 담긴 오줌으로 임금의 건강상태를 점검했다고 적고 있다. 조선 후기 이후 양반가를 중심으로 타원형의 구멍을 만들어 변을 보는 형태가 등장했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민간에서 측간, 뒷간으로 불렸던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름으로써 그 격을 높였다. 근심을 풀고 명상을 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이는 화장실을 휴식공간으로 여기는 현재의 화장실문화운동과도 맥을 함께 한다.
▲처갓집과 변소는 멀수록 좋다? = 조의현 한국화장실연구소장에 따르면, 일제시대에 일부 상류계층이 이른바 ‘문화주택’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집안에 화장실을 들였다고 한다. 그 후 수세식 변기의 구체적 형태, 즉 쪼그리고 앉는 동양식 변기가 반도호텔과 화신백화점 등 일부 특수 건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대한 명칭도 뒷간, 측간에서 변소로 바뀌었다. 오늘날 일반화하고 있는 세면기, 욕실, 변기로 구성된 화장실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2년 마포 아파트에서였다. 그러나 1960년대 대부분의 일반 주택은 마당의 한구석에 자리한 수거식 화장실 형태였다. 도시 서민들은 산꼭대기에 달동네를 형성, 마을 공동 화장실을 이용했다. 달동네 화장실 앞에 아침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장면은 예사로운 풍경이었다. 도시건, 농촌이건 어린이들이 ‘변소’에 빠져 죽는 사건이 드물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표준주택 시스템을 도입, 농촌에서도 화장실을 실내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화장실은 냄새가 지독한 더러운 곳이니 멀리 있는 것이 좋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에 일부 지자체가 화장실 개선운동을 벌일 때, 왜 쓸 데 없는 일에 예산을 낭비하느냐는 비난을 들어야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진짜 ‘화장실’로” =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는 한국 화장실 문화의 변혁을 이끌었다. 정부가 나서 화장실 청결, 개선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서울시내 대형 숙박 위생업소의 화장실이 대부분 수세식으로 전환됐다. ‘괴담’이 나올 정도로 으스스했던 전국 초·중·고 화장실도 1986년에 모두 수세식으로 바뀌었다. 서울시는 일반 가정이 화장실을 개량했을 때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로써 1985년에 37.8%였던 전국 수세식 화장실 비율은 1989년에 61%로 급증했다. ‘변소(便所)’보다 ‘화장실(化粧室)’이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이게 된 시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가 중앙정부와 더불어 화장실문화 운동을 전개했다.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회의, 2001년 한국방문의 해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준비하면서 화장실협회와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등의 민간단체가 등장, 범국민적 운동을 펼쳤다. 월드컵을 개최한 수원시는 1997년부터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 주목을 받았고, 각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화장실 문화운동에 나섰다. 이에 따라 청결할 뿐 아니라 개성적인 미관을 자랑하는 공중화장실이 속속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한국 화장실문화의 제2변혁기로 본다.
이제 전 세계가 한국의 화장실문화의 혁명적 변모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AP통신과 이타르타스 통신이 ‘한국이 화장실 혁명을 이끈다(South Korean Leads Restroom Revolution)’는 제목의 뉴스를 타전했을 때 전 세계 70여개 언론이 동시에 보도했다. 2008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 등 국제대회를 유치한 국가들은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관계자들을 한국에 파견하고 있다. 2004년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하면서 화장실은 21세기 문화를 이끄는 첨단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화장실에 유아용 거치대와 지저귀 교환대, 비데 등을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또 음악을 듣고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문화 화장실’, 통풍·자연발효 시스템을 갖춘 ‘친환경 화장실’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화장실문화운동의 성공 경험을 전 세계와 공유하기 위해 올 11월 세계화장실협회(WTA) 창립총회를 서울에서 연다. 총회 조직위 관계자는 “창립대회를 개최하는 국가답게 앞으로 더 발전된 화장실문화를 가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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