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앞에서 내고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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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이다. 송파구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가지고 남산 터널을 진입했다. 통행료 2000원을 내려는데 수납원이 “앞에 차에서 내고 가셨어요. 그냥 가시면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말인가 싶어 의아해하며 “아, 예, 누구라고 하던가요?”라고 물으니 “그는 모르는 분이고, 누군지 말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 손님 요금이랑 뒷차 3대 요금을 함께 계산하고 가셨어요.”라고 답했다. “아, 그래요. 어떤 고마운 분이, 이 아침에 이런 감동을….”이라고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떠 밀리듯 빠져 나왔다. 그 차량을 따라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차량들의 흐름으로 인해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예정된 회의를 마치고 참석자들과의 대화에서 요금소에서 겪었던 사연을 자랑했다. 일행들은 한결같이 ‘와! 그런 일도, 행운의 날이셨네요’라며 축하를 해주었다. 그 날 나는 그 아침의 감동으로 인해 종일 가슴이 따뜻했다. 생각해보니 남산터널 통행료는 2000원이었고 그 기쁨은 2만원, 20만원을 받은 것 보다 아니, 화폐 단위로는 계산할 수 없는 행복한 마음이었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선행에도 작은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려운 이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베풀고 싶어도 용기를 내지 못해 머뭇거리다 지나친 적도 많았다. 지하철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천 원 한 장을 드리려고 할 때도 옆 사람이 의식돼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싣고 가는 할머니에게 작은 마음을 드릴 때도 용기가 필요했다. “큰돈도 아닌데 귀찮게 한다고…” “혹시 자존심 상해하거나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실까…” 등등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죄송하지만…”이라고 하면서 작은 마음을 건네면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 고마워”라고 할 때는 작은 용기 내기를 참 잘했지라며 스스로 가슴을 토닥였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작은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날 무시하냐’는 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괜히 잘 난 척하는 것이 아니냐’ 등등의 눈길이 겁이 나서 움츠러든 적이 많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오늘 뒤에 오는 차량들에 통행료를 내주신 분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겠지만 작은 용기를 냈을 것이다. 얼굴 모르는 분의 작은 용기는 내게 큰 기쁨이 됐고 그 기쁨은 나도 모르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감동이 되었다.
나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들에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었을까. 그 용기를 내는 것이 쑥스럽거나 불편해서 마음을 닫아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다음으로 미룬 적은 또 몇 번이었던가. 지금도 이 세상 곳곳에는 이름 없는 많은 이들의 작은 용기로 뿌려진 씨앗들이 곳곳에서 새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음을 보고 듣는다. 다음 남산 터널을 지날 때에는 나도 작은 실천을 해보아야지. 리어카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작은 용기도…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을 만나면 ‘고맙습니다.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도 꼭 건네야지. 오늘따라 작은 부딪힘에도 미소로 답이 건네진다. 설렘은 덤인가 보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상임대표 전 울산YMCA시민중계실장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경상일보(http://www.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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