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남녀 구분 없는 '모두의 화장실' 대학 첫 설치…학생 반응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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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 화장실 입구에는 5개의 픽토그램이 그려져 있었다. 치마 입은 사람, 바지 입은 사람, 치마와 바지가 절반씩 그려진 사람, 기저귀를 가는 사람과 휠체어를 탄 사람까지. 일반적으로 남성, 여성으로 구분된 화장실과는 달랐다.
문을 여는 버튼은 어린이나 휠체어 사용자 키에 맞게 낮은 곳에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립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누군가 화장실을 쓰고 있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성공회대, 남녀구분 없는 화장실 설치
성공회대는 지난 16일 '모두의 화장실'을 열었다. 성별과 연령, 장애 여부, 성 정체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 가능한 화장실이다. 남·여 구분 없이 사용 가능한 '성 중립 화장실'보다 확대된 개념이다. 일부 시민단체와 장애인 시설, 병원 등에 있긴 하지만, 국내 대학에 들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화장실 내부는 널찍해 이동이 자유로웠다. 여러개 변기가 칸막이로 구분된 일반 공중화장실과 달리 가정용 화장실 같았다. 넓은 공간에 좌변기, 세면대, 기저귀 교환대, 샤워기와 간이 의자 등이 구비됐다.
화장실 안에서 월경컵 세척이 어렵다는 여성 목소리를 반영해 변기와 세면대를 같이 뒀다. 또 다른 사람과 화장실 안에서 마주칠 일이 없어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도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있다. 영유아나 장애인이 용변 중 실수한 경우 씻을 수 있도록 샤워기와 앉을 공간도 마련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일반적인 공중화장실은 이른바 '정상'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만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화장실 이용이 껄끄러워 소변을 참기 위해 먹는 물을 최소화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모두의 화장실은 말 그대로 모두가 편히 쓸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도 고민없이 쓸수있는 모두의화장실
모두의 화장실은 특히 성소수자에게 반갑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36%가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을 받을까 봐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동에 제약이 많은 장애인도 사용이 편해졌다. 또한 성별이 다른 자녀와 화장실을 가야 하는 부모도 부담을 덜 수 있다.
학생들 반응도 나쁘지 않다. 16일 열린 준공식에 참석한 성계진 성공회대 총학생회 비대위 인권국장은 "모두의 화장실은 거스를 수 없는 인권의 흐름"이라고 했다. 화장실 앞에서 만난 성공회대 여학생 A씨는 "넓고 쾌적해서 이용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보편적 이용권'을 내세운 이러한 화장실이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지시로 모두의 화장실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하버드대·예일대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설치가 늘고 있다. 스웨덴에선 모두의 화장실이 전체 공공 화장실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성범죄에 취약" 반발도…남녀 구분 명시한 법도 걸림돌
하지만 설치 확대가 쉽지 않은 현실적 측면도 있다. 성공회대도 실제 완공까지 5년이 걸렸다. 불법촬영 범죄에 취약하다는 등의 학내 구성원 반대가 있어서다. 교내 토론회에선 "굳이 돈을 들여 그런 화장실을 만들 필요가 있나"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가 "성범죄 문제에 대처하려면 화장실은 성별 분리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법적인 한계도 있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공중 화장실은 남녀를 구분해야 하고, 연면적 660㎡ 미만인 공공 건물 등만 예외를 인정한다. 그리고 장애인·노인·임산부용 변기 등의 설치 규정만 따로 마련돼 있다. 대형 공공 건물에 모두의 화장실이 들어서면 법령을 어길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지학 소장은 "모든 화장실을 모두의 화장실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기존 남녀 화장실에 새로운 선택지를 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소수자'를 보는 인식이 달라져야 국내 대학에서 제2, 제3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확산될 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애인 칼럼니스트인 심지용씨는 "모두의 화장실이 보편적 형태로 자리 잡으려면 이용자에 대한 새로운 낙인 효과를 막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성 정체성, 장애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부터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김윤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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