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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추적>'왜 한국만 변기에 휴지 못넣나' 4대 의문 추적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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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388회 작성일 17-05-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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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는 꼭 휴지통에…. 변기가 아파해요!’
우리나라 공중 화장실에는 대개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다. “변기에 휴지를 넣지 말라”라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 도덕규범이자 정언명령이다. 이런 ‘변기의, 변기에 의한, 변기를 위한’ 절대명령은 경고·협박형, 읍소·구걸형, 웃음유발·패러디형, 순수 문학형, 일러스트형 등으로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돼왔다. 

한국사회에서 "변기에 휴지를 넣지 말라"는 절대적 도덕규범처럼 들린다. /인터넷 캡쳐

다 쓴 휴지를 변기 속에 흘려보내지 않고, 별도의 쓰레기통에 넣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중국, 일부 남미국가뿐이라고 한다. 일본의 관광지에선 아예 한글로 ‘일본 휴지는 물에 잘 녹습니다’라고 써 붙여놓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왜 변기에 화장지 넣는 행위를 ‘죄악시’하게 되었는지 추적해봤다.

#1.국산 변기 한계설
국산 변기의 형태·기능이 외산의 그것보다 떨어져, 이런 사회적 룰이 생겨난 걸까. 변기 판매업자에게 물었다.

-외제와 달리 국산 변기의 기능이 떨어지나.
“그렇지 않다. 국산 중소기업 제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메리칸 스탠더드·쾰러(미국), 토토(일본) 제품과 기능엔 별 차이가 없다. 국내에 들어오는 변기는 외국산도 규격이 같다. 다만 일부 고객들이 중국산 변기는 ‘물을 두 번 내려야 한다’면서 잘 막히는 편이라고 말하더라. 중국산 변기 중에는 내부의 굴곡진 부분(S자관)의 표면이 거칠 거칠한 경우가 더러 있다. 유약이 잘 안 발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찌꺼기가 잘 걸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변기 구멍이 유독 좁다던지, 설계상 잘 막히는 변기가 따로 있는 건가.
“구멍이 좁아서, 변기가 막히는 게 아니다. 외국이라고 특별히 변기 구멍이 넓은 것도 아니다. 변기에 물탱크가 붙어있는 제품이든, 없는 제품이든 국내에선 한번 물을 내릴 때 6L 정도 쓰게 되어 있다. 변기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서울 청계위생도기의 임승현 실장)

위생도기 대리점에서 국내 중소기업 및 대기업의 변기 제품 규격을 줄자로 샅샅이 재봤다. 변기 높이는 38㎝로 같았고, 배수 구멍까지 연결된 길이는 약 6.5~7㎝, 배수 구멍 지름 역시 5.5~6㎝로 비슷했다. 직원들은 ‘의미 없다’는 표정으로 국산 변기 한계설을 일축했다. 다만 ‘중국산 저가 변기’가 잘 막히는 것 같다는 고객 불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변기 제조사·제품 종류에 따라 잘 막히는 변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변기 판매 업자들은 말했다./김소담 인턴기자

#2. 두루마리 휴지가 주범인가
혹시 공중 화장실에 비치된 두루마리 휴지가 ‘우리집 화장지 뽀삐’ 또는 ‘크리넥스 슈프림 소프트’랄지, ‘깨끗한 나라 순수 프리미엄’ 따위가 아니라서 막히는 걸까.

-국내 공중 화장실에서 주로 쓰는 휴지가 유달리 ‘억센 화장지’인가.
“화장실용 화장지는 제조사·브랜드를 막론하고 물속에서 20초 안에 풀린다. 국내에서 화장실용 화장지를 출시하려면 국가기술표준원의 ‘물 풀림’ 기준을 통과해야한다. 화장지 1칸을 비커에 넣어 600회 저은 다음, 완전히 풀리는 시간을 재는 거다. 이게 100초 미만이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화장지는 보통 20초면 다 풀린다. 유럽·미국·일본 제품도 한국 것과 마찬가지이다.”

-두루마리 휴지를 안 쓰면 어떻게 되나.
“문제는 사각 티슈나 키친타월, 물티슈, 냅킨처럼 ‘물 풀림’이 안되는 휴지들을 썼을 때다. 여행용·휴대용 휴지, 미용티슈 같은 걸 만들 때엔 ‘물 풀림’ 기준이 따로 없다. 오히려 이런 제품은 물에 쉽게 녹지 않도록 습윤 지력(濕潤紙力) 증강제를 넣는다. 그래서 젖어도 잘 안 찢어진다.” (유한킴벌리 김영일 홍보부장)

유한킴벌리가 조사해보니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대변은 12칸(1.4m), 소변은 6칸을 사용했다. 김영일 부장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의 두루마리 휴지를 넣거나, 미용티슈처럼 화장실용 화장지가 아닌 휴지를 넣으면 변기가 막힌다”라며 “변기엔 화장실용 화장지만 적당량 써서 흘려보내야한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화장실용 화장지'로 부르는 두루마리 휴지는 '물풀림' 기준을 통과해야만 출시할 수 있다. /인터넷 캡쳐
#3. 그렇다면 범인은 수압·배관인가
-혹시 수압이 비실비실한 건물이나 동네 변기가 잘 막혀서 그런 건 아닌가
“‘변기 수압’은 특정 건물·지역의 수압과는 관계없다. 사용자가 물 절약을 위해 변기 물탱크 안에 벽돌을 넣는다던지 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않는다면, 한번 물을 내릴 때 쓰는 물의 양은 6L로 같다. 변기 수압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변기 물탱크 수위가 충분히 높은지만 확인하면 된다.” (환경부 수도정책과 박민영 주무관)

-세면대·주방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동시에 변기를 내릴 때는 어떤가
“변기 중에 일부 제품이 물탱크가 따로 없고 수도 배관을 세면대·주방 싱크대와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변기는 세면대·주방 수도와 동시에 사용하면, 한 번 물을 내릴 때 6L보다 적은 양이 변기에 투입될 수 있다. 그래서 ‘변기 수압’이 약해질 수도 있다.” (서울 청계위생도기 임승현 실장)

-혹시 개인 하수처리시설(정화조)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일부 건물이 증축 단계에서 하수처리시설 규격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비용을 확 줄이기 위해 오수처리관을 ‘짧게’ 설치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엔 관 자체가 짧아 음식물 찌꺼기·화장지가 정화조 입구에 걸리는 일이 잦다. 겨울엔 화장지 뭉치·찌꺼기가 얼어붙어 정화조 입구를 막기도 한다. 원래 사업장에서 하루에 한 번씩 음식물 찌꺼기를 건져내고 정화조 청소를 해야 하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건물은 그래서 화장지를 변기에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하수처리시설협회 김용식 회장)

#4. 한국인 빅똥설의 진실은?
혹시 한국인의 대변이 너무나도 위대해, 화장지를 함께 넣으면 잘 막히는 건 아닌지 물어봤다. 일각에선 한국인이 육류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져서 대변에 식이섬유가 많고, 질감이 질기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인의 대변 질감이 화장실을 더 잘 막히게 하나.
“한국인이 서양보다 식이섬유 섭취가 높아서 대변에 섬유소 함량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변기 물 내리는 데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섬유질이 많으면 부피는 커져도 묽어지기 때문에 더 잘 내려갈 수 있다. 수분 섭취를 얼마나 하는지에 따라서도 대변 질감에 차이가 난다. 한국은 국 문화가 있어 음식을 짜게 먹는 편이다 보니 평소에 물을 많이 섭취해서 변이 더 부드럽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 내과 천재희 교수)

불혹(不惑)을 넘어선, 변기 옆 휴지통
-두루마리 휴지는 그럼 왜 오명을 썼다고 생각하나.
“화장지는 억울하다. 변기 뚫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변기 속 S자관에 걸려 있는 이물질은 십중팔구 신용카드, 생리대, 껌, 볼펜, 물티슈, 지갑, 장난감, 휴대전화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이물질들이 ‘동맥경화’ 현상을 일으켜 막히는 것이다. 단언컨대 화장지만으로 변기가 막히는 경우는 절대 없다. 2015년부터 일부 서울 지하철 노선 화장실이 ‘휴지통 없애기’ 캠페인을 했다. 시행 초반 3개월 동안 변기가 엄청 막혔다. ‘휴지통을 없앴더니 변기가 더 막힌다’는 편견이 생기는 듯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불러 변기 안에 쌓인 각종 이물질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후 화장지 만으로 막히는 일은 없었다.”(한국화장실협회 백충엽 교육부회장)

1971년 화장실용 화장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신문지·달력·공책 같은 종이로 용변을 닦았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표혜령 대표는 “1970년대엔 물로 씻어내는 수세식 대신 재래식 변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오물 수거업체에서 종이를 함께 버리면 처리가 어렵다고 해서 따로 모아뒀다 태우곤 했다”라며 “그래서 화장실에 휴지통이 생겼고, 이게 40년째 굳어져 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화장실 환경은 점점 변하고 있다. 화장실 문화 시민 연대에선 2008년부터 ‘화장실 휴지통 없애기 운동’을 시작했고,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12년부터 ‘휴지통 없는 화장실’ 캠페인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2013년 유한킴벌리 조사에 따르면 ‘사용한 화장실용 화장지를 바로 변기에 버린다’는 사람이 응답자(1200명)의 51%였다.

종합해보면 ‘화장지=휴지통’이 한국 사회의 절대명령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미용 사각티슈·물티슈 ▲일부 부실한 정화조 설비 ▲신용카드, 생리대, 껌, 볼펜, 물티슈, 지갑 등이 일으킨 ‘동맥경화’ 같은 변수들 때문이지, 두루마리 화장지 그 자체의 문제는 아 니었다.

이제 화장실용 화장지는 과감하게 변기 속으로 흘려보내자. 변기 물이 한방에 확실히 공급되도록, 물탱크가 차오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레버를 힘차게 누른다면 깨끗하게 해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변기가 용솟음친다면, 그건 하늘의 뜻이다. 화장실 휴지통은 그만 놓아주어야 할 때다.
취재=김소담 인턴기자·기사정리=한경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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