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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기고]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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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96회 작성일 17-06-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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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상임대표 전 울산 YMCA시민중계실장 

 

젊은 시절을 보낸, 내게는 고향과도 같은 울산을 방문했다. 점심 식사를 함께 한 지인이 모처럼 태화강변도 거닐어보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설치미술제를 보자고 했다. 그 때가 금요일인 지난 9일, 몹시 더운 날씨의 낮 2시였다. 뙤약볕에 태화강을 걷자는 것도 거기에 또 설치미술을 구경하라는 것도 썩 내키는 권유는 아니었다. 다만 그리웠던 태화강 산책이 얼마만인가 싶어 못 이기는 척 태화강변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햇볕도 따갑고 그냥 웬만한 건물 앞이나 공원 등에서 마주쳤던 조형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큐레이터의 예쁜 설명도 반건성으로 들었다. 그런데 한 작품 앞에서 였다. 큐레이터가 설명해주는 작가의 히스토리를 들으면서 그만 가슴에 ‘쿵’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설치미술을 하는 작가는 팬층이 많이 있어도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하기 위해 작가들은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내 앞에 서 있는 작품 ‘Lightmare’를 전시일본 작가 미와 교코씨는 아르바이트로 시체를 닦는 일을 한다고 했다. 임금이 높은 일인 시체 닦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작품에 대한 열정을 쏟아 붇는다는 그의 작품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런 무식한 관람객이었던 나는 다시 작가의 혼이 깃든 작품을 찬찬히 감상했다. 예술은 그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감상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특정 부류이거니 했던 내가 아니던가. 그런데 작가의 생활과 열정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돼 감성을 자극하고 나도 모르게 감동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몹시 낯설었다.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감동이 지워지지 않았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곳곳에서 오늘도 아름다운 땀으로, 행복한 땀으로, 자신을, 우리를 키우고 가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경의가 표해진다.

지인을 만나는 단순한 울산 방문에서 마침 국제설치미술제를 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작다면 작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작품을 향한 사랑의 열정에 감동받아 미술에 대해, 설치미술에 대해 아니 문화예술에 대해 새로운 씨앗을 심는 날을 갖게 된 것이다.

벌써 여러 날이 지났건만 태화강을 수놓고 있는 30여점의 작품이 새삼 다시 머릿속을, 마음 속을 누비고 다닌다. 대수롭잖아 보이던 그 작품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조금씩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날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의 부탁도 받은 바 없이 난데없이 이 글을 쓰고 싶어진 것도 이런 감동을 울산사람들도 나누고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어쩌면 알아주지 않는, 크게 봐주지 않는 설치미술제를 11년간 이끌어온 모든 이들에게 격려와 사랑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동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을 것인가. 특히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지난 11년 동안 단 한번이라도, 단 한작품이라도 가슴 속에 넣을 수 있었다면 그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태화강이라는 천혜의 자연 속에 아무런 경계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 펼쳐진 예술의 혼. 울산시민들, 더 나아가 우리 국민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내년 12회에는 어떤 작가의 땀과 피와 노력의 흔적들이 태화강변을 수놓을지 기다려진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상임대표 전 울산YMCA시민중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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