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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 환경 문화 운동

화장실 변천사(우리나라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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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74회 작성일 17-01-1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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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민

요사이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기 위하여 각계의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 화장실이 더럽고 입에 올리기 부끄러운 곳이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쾌적한 화장실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도 전개된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서 여기에서 우리는 화장실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인간의 배설 행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나 유물은 이미 기원전 3,000년대부터 1,400년대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실은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금의 수세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화장실은 흔히 뒷간이라 불리면서 집안에서도 잘 안보이는 곳에 배치하고, 되도록 생활동선에서 먼 곳에 두었다. 뒷간은 멀면 멀수록 좋다고 하는 속담도 있듯이 냄새나고 더러운 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뒷간이라는 말은 일제시대때부터는 변소하고 불리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파트 등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면서 변소라는 말 대신에 우회적인 표현인 화장실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6년 목제농기구, 가야금 등이 출토된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2,000년전 인분과 기생충 알이 발견되었고. 통일신라시대 경주 도시(王京) 유적에서도 화장실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견됐다. 길이 4m, 폭 1m, 깊이 80㎝ 정도 규모로 20∼30㎝ 크기의 돌을 사용해 5단 정도 높이의 석곽을 세운 형태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건물지 뒤편에서 나온 것으로 미뤄 화장실이나 정화조가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지만 토양분석을 하지 못해 역시 단정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 왕은 소변을 요강에 보았고, 대변은 매우틀(그림1)이라는 휴대용 변기를 이용했다. 매우틀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그 안에 사기나 놋그릇을 넣어 서랍처럼 넣고 뺄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경주의 조선시대감옥 유적에서도 화장실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이밖에 서민 가정에서는 수거식 뒷간(똥오줌 누는 공간을 '뒷간'이라 이르게 된 것은1459년 '월인석보'에서 처음 나타난다), 아궁이의 재를 이용한 잿간, 절간의 자투리 공간인 언덕을 이용한 해우소, 양반네들의 누각형 잿간, 똥돼지의 먹이 공급원으로 쓴 통시형 뒷간, 바닷가 밀물을 이용한 측간 등 생태적 환경을 이용한 화장실이 많았다.

민속공원내 뒷간을 참조하여 옛날 조상들이 사용한 화장실의 형태를 알아보자.

이러한 화장실의 형태에서 콘크리트가 널리 사용되면서 나무 판자 대신 콘크리트로 모양을 만들어 사용하는 약간은 발전된 형태의 변소가 이용되고 최근에는 그저 깨끗한 화장실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 인식되어 화장실 내부에 액자를 건다든지 음악을 틀어 화장실의 분위기를 카페나 전시회장처럼 가꾸어 놓았다. 또한 장애인애 대한 배려를 한 화장실도 늘어가고 있으며 쇼파, 탁자, TV, 꽃등이 꾸며져 있어 쉴 수 있게 해놓고 여러 개의 타월을 비치 해놓은 곳도 있다. 방향제를 설치, 냄새를 바꾸기도 하고 꽃으로 장식을 해놓기도 한다. 화분을 가꾸는 곳도 많고 유아용 변기를 설치하는 곳도 있으며 가족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화장실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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